2009년 3월 27일 금요일

추천도서,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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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인칭을 활용한 서사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작품은 다층적 담화를 형성하는 복수의 화자와 수화자 기법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먼저 각 장의 인칭을 살펴보면 1장은 ‘너’라는 이인칭을 사용하며, 2장은 ‘그’로 삼인칭을, 3장은 ‘당신’이라는 존칭 이인칭을, 4장은 ‘나’ 일인칭, 그리고 5장 에필로그에서는 다시 ‘너’라는 이인칭을 사용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전체 다섯 개의 장에서 3개의 장을 이인칭으로 기술한다는 점이다. 나머지는 삼인칭(2장), 일인칭(4장)으로 기술된다.

“오빠 집에 모여 있던 너의 가족들은 궁리 끝에 전단지를 만들어 엄마를 잃어버린 장소 근처에 들리기로 했다. 일단 전단지 초안을 짜보기로 했다. 옛날 방식이다...........글을 쓰는 사람이니 문안작성은 네가 해라, 오빠가 너를 지명했다. 글을 쓰는 사람. 너는 해서는 안될 일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귀밑이 붉어졌다. 과연 네가 구사하는 어느 문장이 잃어버린 엄마를 찾는 데 도움이 될지. (p.10)


굳게 잠겨 있는 파란 대문 앞에 젊은 여자가 집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누구요?
당신이 뒤에서 기침 소리를 내자 젊은 여자가 뒤를 돌아다보았다. 머리를 뒤로 묶고 매끈한 이마를 지닌 여자의 눈에 반가움이 실렸다.
-안녕하세요!
당신이 바라보자 젊은 여자가 미소 지었다.
-여기가 박소녀 아주머니 댁이지요? ............... 당신은 홍태희라고 자신을 소개한 젊은 여자를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책을 읽어 드리기로 약속했다니? 아내에게 말인가? 당신은 아내로부터 소망원 이야기도 홍태희라는 이 여자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pp.139-140)

위에서 인용한 대목에서 보듯이 이인칭으로 기술된 서사는 나에게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인칭 소설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고 외국의 경우 몇 몇 작품에서 실험되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엄마를 부탁해』를 보고서 비로소 이인칭 소설이 어떤 모습일지, 어떤 느낌인지 가슴으로 다가온다. 이인칭으로 기술된 1,3,5장을 읽고 있으면 화자가 마치 독자인 나의 면전에서 나에게 말을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또 같은 이인칭인데도 ‘너’와 ‘당신’은 매우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1장과 5장 에필로그에서의 ‘너’는 마치 수화자인 ‘나’의 또 다른 자아처럼 느껴지는 반면 3장의 ‘당신’은 엄마 박소녀가 자신의 남편에게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1장에 등장하는 장녀의 목소리 일수도 있지만 아버지를 면전에 대고 ‘당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인칭으로 기술된 서사를 내가 처음으로 접한 것은 1995년 필리핀에서 상담훈련을 받을 때였다. 물론 소설은 아니고 <임상목회훈련>이라는 과정에서 나의 담당 감독자가 한 과정이 끝날 때 제공했던 나에 대한 평가서로 “영식, 당신은 어쩌고 저쩌고~”라고 문장이 시작되었다. 나의 내면세계를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듣는 것은 강력한 거울효과가 있다. 그래서일까? 『엄마를 부탁해』에서 이인칭으로 기술된 부분은 고해성사를 듣는 느낌이 든다. 천주교 전통에서 그러하듯이 신부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그 고백을 다시 신부님의 입을 통해서 재확인하는 것 같다.


2. 인칭-화자-수화자-시점의 다양한 조합

이인칭으로 기술되는 1장 『아무도 모른다』에서 화자, 수화자, 시점은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지 보자. 우선 화자가 이인칭으로 말을 하기 때문에 수화자는 필연코 ‘너’가 될 수 밖에 없다. 마틴 부버가 일찍이 말했듯이 나와 너는 짝 말이기 때문이다. 즉 나는 너를 전제로 하고 너는 나를 전제로 하여 성립되는 말이다. 1장에서 수화자인 너는 어머니 박소녀의 장녀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소설에서 화자가 ‘누가 말 하는가’에 대한 답이라면 시점은 ‘누가 보는가’에 대한 해답이다. 대개 화자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화자와 시점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1장에서 화자는 ‘너’에게 말하는 ‘나’이지만 자신의 시각으로 보는 대신 ‘너’의 시각, 즉 장녀의 시각으로 어머니의 실종에 대한 상황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반추하는 내용을 거울처럼 반영해준다. 이런 식으로 인칭-화자-수화자-시점의 조합을 장별로 살펴보자.

2장 『미안하다, 형철아』는 삼인칭으로 기술되며 시점은 장남이다. 이인칭과 달리 삼인칭 서술에서는 수화자가 누구인지 뚜렷하지 않다. 삼인칭의 특징이 서술의 대상으로부터 한걸음 물러서서 거리를 두기 때문에 이인칭 화자에서 보는 짝 말이 없기 때문이다. 2장에서 다뤄지는 내용은 어머니와 장남의 관계이다. 자신이 검사가 되기를 바랐던 엄마. 그것이 자신의 꿈이었고 대수롭지 않게 포기한 것인데 바로 엄마의 꿈이기도 했다는 자각으로 끝을 맺는다.

“그는 검사가 되지 못했다. 엄마는 그에게 니가 하고 싶어 하는 것, 이라고 했지만 그는 그것이 엄마의 꿈이기도 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청년시절에 꾼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그의 엄마의 꿈을 좌절 시킨 것이라고는 생가하지 못했다. 엄마는 일평생 그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한 게 엄마 자신이라고 여기며 살았다는 것을 그는 이제야 깨달았다. 미안한 사람은 저예요, 나는 약속을 못 지켰으니까. 엄마를 찾아내면 오로지 엄마만 돌보고 싶은 욕망으로 그의 가슴은 터질 듯 했다. (pp.136-137)


3장의 『나, 왔네』는 ‘당신’이라고 이인칭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나”가 화자이다. 시점은 어머니 박소녀의 남편으로 설정되어 있다. 물론 이야기 안에서는 화자인 “나”의 정체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딸이 참지 못하고 수화기 저편에서 어--어어어 소리를 내어 울었다. 당신은 송아지 같은 딸의 울음소리를 수화기를 귀에 바짝 붙이고 들었다. 딸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당신이 붙잡고 있는 수화기 줄을 타고 딸의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당신의 얼굴도 눈물범벅이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잊어도 딸은 기억할 것이다. 아내가 이 세상을 무척 사랑했다는 것을, 당신이 아내를 사랑했다는 것을.(p.198)

생각하기에 따라 고해 성사를 받는 신부님일 수도 있고 아버지의 또 다른 자아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문자 그대로 아내에 대한 남편의 고해성사이다. 하지만 4장의 화자로 등장하는 어머니 박소녀의 영혼일 가능성이 더욱 커 보인다. 어머니 박소녀가 자신의 속 썩이는 남편에게 진짜로 듣고 싶었던 말이 그의 입을 통해서 흘러나온다.

4장 『또 다른 여인』은 일인칭 화자로 서술되며 화자와 시점은 어머니 박소녀 자신의 시각이다. 인칭-화자-시점이 같은 인물이기 때문에 별 다는 변화가 없는 반면 막내딸을 비롯하여 이은규, 남편, 시누, 친정엄마 등 다양한 수화자가 등장한다. 『엄마를 부탁해』라는 작품 전체의 구조에서 볼 때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가족들을 위해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쏟아 부으신 엄마, 그 엄마를 서울역 지하철에서 잃어버리고 엄마에 대한 자신들의 무심함, 무책임, 무관심, 몰이해를 큰 딸을 비롯하여 큰 아들, 남편이 차례대로 고해성사 하는 내용이 1,2,3장이라면 4장은 한 인간으로서 어머니가 어떤 분인지, 자신의 삶을 자신의 시각으로 보고 진정 어떻게 느꼈을 지를 조명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삶은 정말 불행하기만 했을까? 가족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삶이 전부였을까? 물론 아니다. 이런 점은 엄마가 평생의지하고 살았던 정인 이은규의 등장으로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 사람의 생애에는 슬픔과 비극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족들을 위한 헌신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한 여자로서 연정을 품은 사람도 있고 집을 지켜야 한다는 강한 의지도 있지만 이제 훌훌 벗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은 욕망도 있다. 이제 일인칭 화자로 등장한 엄마는 자신이 관계를 맺었던 중요한 인물들을 차례대로 방문한 다음 마지막으로 자신이 태어난 공간, 친정어머니가 계신 어릴 때 집으로 돌아 엄마의 품에 안긴다.

저기,
내가 태어난 어두운 집 마루에 엄마가 앉아 있네.
엄마가 얼굴을 들고 나를 보네. 내가 이 집에서 태어날 때 할머니가 꿈을 꾸었다네........엄마가 방금 죽은 아이를 품에 안듯이 나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네. 내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나의 두발을 엄마의 무릎으로 끌어 올리네.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p.254)

5장 에필로그: 장미 묵주. 이 부분은 4장에서 탈고한 뒤 덧붙인 부분이라고 한다. 엄마를 기억하고 사랑하기에 아직 늦은 것이 아니며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란다. 1장과 똑 같은 인칭-화자-수화자-시점으로 서술된 이 대목은 엄마를 소재로한 작품을 끝내고 작가 자신이 엄마에 대한 시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기억들이 어떻게 치유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엄마를 잃어버린 지 1주일째와 9개월 사이에 엄마에 대한 많은 인식의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단일한 작가가 집필한 소설은 몇 명의 화자를 내세우든지 몇 개의 시각으로 기술되든지 본질적으로는 일인칭이요 작가의 시점이다. 『한 세계 자체로서 엄마』(p.275)로서 작가 자신의 엄마를 일인칭, 이인칭, 삼인칭을 총동원하고 장녀의 시각, 장남의 시각, 아버지의 시각, 엄마 자신의 시각을 빌어 기술함으로써 입체적으로 풍성한 서사를 생산했지만 결국 본질적으로는 작가 자신의 시각의 확장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점을 다각화함으로 얻는 유익은 무엇일까? 일인칭 참여자 시점의 좁은 시야를 탈출할 수 있다. 이는 치유를 목적으로 실행되는 치유적 글쓰기나 사이코드라마의 근간이 되는 기법이기도 하다. 모르긴 하지만 저자 신경숙은 이 소설을 쓴 다음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서 더 넓고, 더 깊고, 더 풍성한 이해에 도달 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한 여자, 태어난 기쁨도 어린 시절 소녀시절도 꿈을 잊은 채 초경이 시작되기도 전에 결혼을 해 다섯 아이를 낳고 그 자식들이 성장하는 동안 점점 사라진 여인. 자식을 위해서는 그 무엇에도 놀라지도 흔들리지도 않는 여인. 일생이 희생으로 점철되다 실종당한 여인, 너는 엄마와 너를 견주어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한 세계 자체였다.(p.275).

엄마는 자신의 좁은 일인칭 참여자 시각을 훨씬 벗어난 보다 넓고 높고 깊은 우주 같은 인격체였다는 깨달음이다. 다음의 고백도 들어보자.

너는 새벽빛 속에 서 있는 오빠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오빠는 엄마의 일생을 고통과 희생으로만 기억하는 건 우리 생각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엄마를 슬프게만 기억하는 건 우리 죄의식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그것이 오히려 엄마의 일생을 보잘 것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일일 수도 있다고. 오빠는 용케도 엄마가 항상 입에 달고 지내던 말을 생각해냈다. 엄마는 조금만 기쁜 일이 생겨도 감사허구나! 감하헌 일이야!라고 말했다. 엄마는 누구나 누리는 사소한 기쁨들을 모두 감사함으로 대신 표현했다. 오빠는 엄마의 감사함들은 진심이었다고 했다. 엄마는 모든 것에 감사해했다고.감 사함을 아는 분의 일생이 불행하기만 했을리 없다고.(p.272)

엄마에게 효도하지 못한 죄의식에 사로잡힌 일인칭, 참여자의 관점을 벗어나 엄마의 삶을 엄마의 시각에서 조명하는 대목이다. 물론 1,2,3,4장의 과정이 없이 이 말을 했다면 엄마에 대한 죄의식을 감추기 위한 또 다른 변명이나 합리화, 무의식적인 자기 방어기제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화자와 시점으로 기술된 철저한 자기 성찰다음에 깨달은 고백이기 때문에 독자인 나에게 가슴이 아리도록 핍진성 있게 다가온다.


3. 시점의 확장은 치유의 본질적 요소이다

나는 치유의 관점에서 서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때문에 상담의 치유적 요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고 있다. 치유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가 자신과 타인에 대한 관점의 확장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문제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좁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 즉 자신의 과거 상처된 경험으로 세상을 보고 자신을 보고 타인을 보기 때문에 창의성이 떨어지고 문제에 사로잡힌다. 그러한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시각을 확장하여 보다 깊은 인간이해로 안내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좋은 모범을 보여준다. 나도 치유적 자서전을 쓰면서 엄마라는 존재가 태산처럼 기억의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체험했다. 그때는 일인칭 참여자 시점으로 기술했고 그렇게만 해도 도움이 되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를 흉내내보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낀다. 같은 엄마지만 다양한 시각, 다양한 화자로 기술하면 더 깊은 이해에 도달 할 수 있다. 그리고 치유의 본질은 자신의 좁은 시야를 탈출하여 더 깊은 자기 이해, 타인 이해에 도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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