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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 보세요!”라고 시작하는 이 소설은 내 삶이란 이런 것이었다고, 그땐 그랬던 것이고, 또 그 시절엔 그러했었다고, 그런데 여러분의 삶은 어떤 것이냐고 묻는 듯하다. 14살 소년 ‘디테’, 작은 키를 높이기 위해 신발창을 깔고 고개를 바짝 치켜세운 꼬마 보조웨이터의 모양이 측은하게 다가온다. 어린 소년이 세상을 알아가는 모습, 호텔의 핫도그를 팔아 뒷돈을 만들고, 아가씨들을 찾아 이성을 알게 되고, 길 위에 던져진 동전을 찾아 기어 다니는 인간들을 보며, “돈으로 예쁜 여자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시적 감흥까지 살 수 있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부자들의 이중적 태도, “거리에서는 그렇게 점잔을 빼던 사람들이었는데 테이블(호텔)에서 (여자들과) 흥에 겨워 날뛰는”“원숭이처럼 야비하고 우스꽝스런”위선을 본다. 또한 “오두막집만 그리며 ‘새로운 인간’을 찾는 게 예술가인 시인의 과제라고 떠들어 대는”허위를 본다. 그래서 더욱이 돈은 삶을 멋지게 꾸려나갈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자 도구가 된다. 어느덧 호텔웨이터 디테의 꿈은 백만장자가 되어 성적 쾌락과 지적 허위, 부자의 위선, 낭만의 황금빛 도시, 프라하에 자신의 호텔을 갖는 것이 된다. 호텔 프라하의 사장처럼 사는 것.
숲속에 그림같이 자리잡고 있는‘호텔 티호타’로 옮긴 디테는 소위 사회 고위층 인사들의 이면에 감추어진 일탈들을 목격하게 된다. 그들의 저열함과 적나라함, 지식의 허영과 몰염치, 그러함에도 ‘노동의 고귀함’, ‘예술에 대해서’, ‘가난한 오두막집 삶의 행복함’이란 언어가 “호텔에서 예쁜 아가씨들을 무릎에 앉히고 밤새 마시고 먹고 하는 사람들”, 부자들, 장군, 대통령....그들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의혹스럽기만 하다.
티호타를 떠나‘호텔 파리’에 둥지를 튼 디테는 영국왕을 모셨다는 지배인을 멘토로 새로운 터전에 적응해 나간다. 급기야 에디오피아의 국왕 ‘아비시니아 황제’의 수발을 들게 되면서 훈장을 받게 되지만 오히려 우호적이었던 지배인과 사장의 시기와 질시어린 눈총을 받는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2차 세계대전으로 치닫고, 독일인에 대한 적개심이 그득한 프라하 시민들에게 독일인과 다니는 체코인은 동족을 배반한 사람으로 내몰린다. 순수 독일계 혈통의 여자 ‘리자 엘리자베스 파파네크’와 사랑은 결혼으로 이어지고, 여타 유럽국가와 마찬가지로 체코는 독일의 점령지가 된다.
독일 여성 리자와 결혼을 위해 순수 독일혈통을 생산 할 조건 심사를 위한 신체검사를 받지만, 한편에선 독일인들이 체코인들을 처형할거라는 기사가 나돌고 있다. 그럼에도 “나를 무시했던 그들과 이야기하려면 강자의 위치에 올라서야만 한다.”는 목표를 좌절시키지는 못한다.
유대인을 홀로코스트로 내몰고 강탈한 고가의 우표집을 손에 쥔 아내‘리자’의 죽음으로‘디테’는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아내의 사체와 지체아 아들을 뒤로하고 백만장자의 꿈을 쫒았지만, “폭탄이 떨어지고 있는 동안에도 지하창고에서 들고 온 나무판자에 못을 박으면서 헤헤 웃던”아들 ‘지크프리트’의 망치소리는 자신의 두개골을 뚫는 것처럼 고통스러움을 느낀다.
인생의 한 우연한 동작이 가져온 오해는 동족에게 변명할 입장권이자 차표가 되어주고, 자신의 얼룩진 인생을 없애 줄 기회로 활용된다.
자신이 일생토록 가꾸어온 꿈인 호텔을 소유하고 백만장자가 되었으나, 해방된 조국은 이내 부자들을 억압하고 구속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러한 사회의 억압이 다가오지 않는다. 체코의 영향력있는 정치가가 된 티호타 호텔 지배인이었던‘즈데네크’의 배려 때문이다. 그의 인생이란 백만장자들과 대등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위치가 되기 위한 노력이었음에도 그들의 구속 행렬에 동행하지 못하자 교도소를 찾아가 백만장자임을 항변하는 디테의 모습에서 가슴 저미는 무엇이 울컥 올라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또한, 수도원에 차려진 백만장자들의 임시 교도소는 “부유한 수도원에서 십자군 기사들이 요리하는 것 같았고”, “그들(민병대)의 군복을 입고 우리 스스로를 감시했을”정도로 타락한, “채플린도 생각하지 못할 우스꽝스런”코미디로 묘사한다. 이렇듯 이데올로기의 공허함, 사회 지도층, 자본가의 위선과 부조리, 부패와 무능과 같은 사회고발이 이 작품의 저변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디테’의 삶의 회한과 깨달음은 진정 무엇이었을까? 라는 한 남자의 일생을 떠나서는 이야기 할 수 없는 작품이다.
자신의 꿈이었던 모든 것을 뒤로하고 삼림 벌목꾼으로, 도로 보수인으로 오지를 찾아드는 디테와 나귀, 그리고 염소와 고양이가 외줄로 걸어가는 시골길의 한적함에서 비로소 삶의 평온을 바라보게 된다. 나귀가 이끄는 마차에서 “목구멍과 후두에 낀 가래를 뱉어내려고 헛기침하는 것처럼”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히힝거리는 나귀의 울음에서 세상의 찌든 떼를 말끔히 벗겨낸 허허로운 정화를 느낀다.
보수하고 돌아서면 눈과 비바람으로 전혀 일을 한 것 같지 않은 원래 상태로 변해버린 길처럼 표시나지 않는 우리네 인생길은 자신만이 알고 있다. “ 내 인생의 유일한 증인은 바로 자신”인 것 처럼. 세월이 흘러 주름이 어느덧 깊게 패인 자신의 얼굴을 들여보다 문득 우린 죽음에 대해, 그리고 영원과 불멸에 대해 생각게 된다. 그리곤 작품 속 디테처럼 “자신의 인생여정의 무의미를 맛보며 어차피 지속되지 못할 아름다운 것들 안에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것, 바로 그것이 벌써 죽음의 문제에 대한 답의 시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낮에는 마을로 가는 길을 찾고 저녁에는 글을 쓰며 다시 내 인생의 길을 찾아 내 과거를 덮고 있는 눈을 치울 거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디테에서 나는 내 인생의 길을 정비하기 위한 시간을 어느때 부턴가 그리고 있었음을 기억해 낸다. ‘아비시니아 왕“을 모셨던 디테의 소박한 자부심이 내겐 무엇일까? 이 작품을‘모파상’의 『여자의 일생』과 비견케 되는 ‘흐라발’의 『남자의 일생』이라고 하기에 주저함이 있을까? 작품의 후반부에 펼쳐지는 영적이고 시처럼 이어지는 삶에 대한 독백과 사유들은 정말의 평온한 삶을 생각게 한다. 아름답고 여운이 오래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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