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3일 일요일

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 / 웬디 베케트 지음 | 예담

나의 사랑스런 중고책 사냥터, 북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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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북스토리 커뮤니티) http://www.bookstory.net/module/00_book/book_view.bs?bNO=32758



인간의 가장 깊은 진실에 직면하는 용기를 갖고 싶다


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녀가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과 함께 강한 부러움을 느꼈다. 그녀가 BBC 방송국의 협찬으로 유럽의 명망있는 미술관을 탐방하는 멋진 미술여행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 책의 원제목 "Sister Wendy's Grand Tour"에서 드러나 있는 것처럼 18세기 후반 프랑스가 번성했을 때 유복한 집안의 교육받은 젊은이라면 누구나 떠났던 Grand Tour라는 문화적인찾아나섬이 그녀에게도 결코 작은 경험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서문에서 자신이 조용하게 기도하며 사는 삶을 택한 사람이며 소박한 일상생활만으로도 크나큰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고 아무리 좋은 경험이라고 해도 자신의 그런 행복에 비견될 수는 없노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알렉산더시대의 디오게네스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무슨 청이든 들어주겠다고 말하는 알렉산더에게 햇살을 가리니 옆으로 비켜서주면 좋겠다고 대답하는 디오게네스말이다. 자신의 선택을 믿고, 소박한 생활에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그녀는 결코 오만하지 않은 그러나 당당한 자신감으로 인해 세상의 온갖 명망과 재산을 소유한 사람보다도 오히려 더 부유해 보인다. 그게 내가 그녀야말로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이유며 부러워한 이유다.

내가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건 교육방송을 시청하다 우연히 그녀가 설명하는 미술 강좌를 들으면서부터였다. 그때 그녀는 드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작품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발레하는 무희들이 그려진 그림이었는데 “나는 드가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이 작품은 아주 재미있죠. 빛의 대비로 무희들의 표정이 너무나 생생하게 살아나지요…”하면서 자신의 주관을 뚜렷이 밝히며 객관적으로 그림에 대한 평을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 그리고 그림의 시대배경과 작가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는 물론이고, 그림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표정을 통해 내면의 미묘한 심리상태까지 읽어주는 모습에서 나는 대번에 그녀에게 반하고 말았다.

그후 얼마동안 그녀를 잊고 있었는데 어느날 극장에서 ‘내겐 너무 사랑스런 그대’라는 미국 영화를 보다 극중 주인공이 웬디 수녀의 미술 강좌를 TV로 보는 장면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잠시 잊고 지내던 첫사랑의 느낌이 되살아난 것같은 설레임이 일었다. 그리고 얼마전 그녀가 낸 이 유럽산책이라는 책을 만난 나는 순식간에 그녀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녀와 그녀가 들려주는 그림 이야기는 내게 매력덩어리였다.

특히 피렌체에서 본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작품에 대한 해석이 특히 멋졌다. ‘조개껍질에서 나오는 비너스, 비너스는 알몸으로 온다. 이 부분이 비너스 이야기에서 가장 슬픈 부분인데 알몸으로 땅을 밟는 것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세계는 매우 사랑스런 세계이고 플로라는 비너스를 감싸줄 우아한 옷을 준비하고 있다. 플로라가 그렇게 하는 것은 어쩌면 이 세계가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강하지 못해서 인지도 모른다. 비너스는 미의 신일 뿐만 아니라 사랑의 신이기도 하다. 인간의 가장 깊은 진실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사랑. 보티첼리는 우리가 그 도전에 직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그녀는 말한다.

후우. 이 대목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고등학교 때에도 이 작품을 미술 시간에 감상한 적이 있고, 여러 책에서 많이 이 그림을 접했지만 나는 한 작품을 이렇게 가슴 떨리게 만나도록 해주는 해석을 전에는 결코 만난 적이 없다. 그녀가 로마에서 만난 베르니니의 ‘아폴로와 다프네’는 또 어떤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아폴로와 다프네의 이야기에서 따온 이 작품은 다프네를 사랑하는 잘생긴 아폴로가 다프네를 감싸안는 순간 다프네가 월계수 잎으로 변하기 시작하는 장면을 조각한 것이다. ‘다프네는 왜 달아나는가? 그녀는 섹스를 두려워했을까? 특별히 아폴로가 싫었던 것일까? 아니면 태양의 신과 결혼해서 그의 영광과 빛의 영향안에 들어가는 것, 그러니까 그 권력이 싫었던 것일까? 그녀는 바보인가? 혹은, 신성 자체, 압도적인 신성의 도전 자체를 두려워했던 것일까?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베르니니는 그녀가 아폴로를 거부한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녀가 두려워했던 것이 무엇이었든 다프네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아폴로는 비록 자신이 원하던 방식으로는 아니지만 자신이 원했던 대상을 얻을 수 있었다. 다프네가 월계수 나무로 변해버리자 아폴로는 그것을 자신의 상징으로 삼아 그후 계속 월계수 화관을 쓰고 다녔다. 그런 식으로 아폴로는 자신의 사랑스런 다프네를 가질 수 있었고 그의 머리를 두르고 있는 다프네도 그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인 플라토닉한 사랑으로 말이다. ’

난, 여기에 이르러서는 거의 전율을 느꼈다. 어렸을 때 읽은 그렇지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내가 가장 매력적으로 생각했던 캐릭터인 아폴로와 그를 거부한 다프네 이야기를 다시 만나게 된 것 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벅찬데 그걸 조각한 작품과 그 작품에 대한 차분한 이야기가 잠시 내게 책을 내려놓게까지 만들었다.

문학이 미술가의 안목으로 하나의 미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지는 개인적이지만 너무나 공감이 가는 참신한 평론가의 해석이 하나의 신화를 더욱 더 신화답게 만들고 있다! 이야기를 떠나 페이지 가득한 그림들만 응시한다해도 너무 기분이 좋아지는 이 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 난 그림 읽기가 점점 더 즐거워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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