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9일 화요일

뉴라이트 사용후기: 상식인을 위한 역사전쟁 관전기 / 한윤형 지음 | 개마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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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에 대한 새로운 비판서가 나왔다. 한윤형이라는 인터넷 논객 겸 대학생(...)이 쓴 책인데 나름 재미가 있다.

뉴라이트 논란이 우리 사회를 휩쓴 후 뉴라이트에 대한 분석, 비판이 서서히 출간되었다. 탈민족주의, 비주류 사학의 관점에서 뉴라이트를 비판하려 한 김기협의 『뉴라이트 비판』, 뉴라이트에 대한 기성 주류 사학계의 입장을 정리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묻다』등의 단행본을 비롯, 뉴라이트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담은 글과 논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비판은 날카로웠고 가차없었다. 뉴라이트의 오류, 맹점을 잘 지적해내는 글들이 적지 않았다.

다만 그 대부분의 글을 읽을 때 마다 나는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이들은 뉴라이트의 진정성은 무시하지?'

'왜 뉴라이트의 실증적 자료에 대한 반박은 없을까?'

난 한때 뉴라이트의 이론에 무척 감명받았던 사람이다. 지금은 그들의 주장과 방법에 회의적이며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지만, 적어도 뉴라이트가 내세우는 논리와 비판이 황당무계하고 사악한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문제의식은 날 매료시켰으며 그들이 광범위하게 포섭한 탈민족적, 진보적 시각과 탁월한 실증적 역사해석은 교과서의 세뇌 속에서 꽉막힌 민족주의에 빠져있던 나에게 역사인식의 이면성, 상대성을 인식시켜 주었다.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뉴라이트 논리의 모순과 자가당착을 발견하게 되며 나는 뉴라이트로부터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러나 뉴라이트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지금 역시, 뉴라이트 논의의 진정성이나 그들이 제시하는 실증적 역사해석, 그들의 비판에 대해서는 귀를 막은 채 뉴라이트에 대해 피상적이고 감정적인 비난과 매도만을 늘어놓는 여론과 똑똑한 '지식인'들의 태도에 더 큰 반감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좋아하는 지식인들 역시 뉴라이트 문제 앞에서는 이성적인 판단과 비판의 끈을 놓아버리는 이들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책을 썼나보다. "너는이런 얘기를 하니까 친일파야!", "너는 수구 꼴통이니까 안돼" 에서 벗어나 뉴라이트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고 분석하여 비판한다. 특히 이전에 김기협의 『뉴라이트 비판』을 통렬히 비판한다.

이렇듯 저자는 뉴라이트에 대한 오해와 다분히 의도적인 왜곡, 곡해를 하나씩 파헤쳐 가며 식민지 근대화론 등, 뉴라이트 주장에 대해 이성적인 해석을 보여준다.

이러한 해석을 도출해내기 위해 그는 기존의 민족주의적 사학이 외면했던, 혹은 애써 묻어두었던 부분과 모순점들에 대해 탈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비판을 토해낸다.

여기까지만 보면 뉴라이트에 대한 옹호를 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저자 자신이 밝혔듯 기본적으로 이 책은 뉴라이트를 비판하는 책이며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뉴라이트에 대한 정밀한 비판을 위한 비판일 뿐이다(9쪽).

이 말은 정당하다. 뉴라이트 담론 자체가 민족주의 사관이 갖고 있는 모순점, 한계를 비판하며 출발한 것이기에 기존의 민족주의 사관에 얽매여서는 뉴라이트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설령 철저한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비판을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뉴라이트가 비판하는 민족주의 사학의 모순점을 철저히 부정하거나 외면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민족주의 사학의 모순점은 뉴라이트 뿐 아니라 임지현, 박노자를 비롯한 '좌파적' 비판자들로부터 이미 제기되어온 문제들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민족주의 사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민족주의 사학 스스로 극복해야 할 성격의 것들이다.

저자의 역사인식은 기본적으로 위와 같은 바탕에 서 있는데, 그 위치에서 뉴라이트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인용이 좀 길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라면 바로 이러한 부분일 것이다. 이러한 해석을 볼 때, 비로소 뉴라이트가 남한의 독재정권을 찬양하면서도 그 거울상인 북한을 그렇게 극단적으로 부정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물론 이것만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렇게 뉴라이트의 주장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편견없이 분석하여 탈민족적인 입장에서 날카롭게 비판한 후 책은 2부로 넘어가 민족주의와 뉴라이트의 모순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역사를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 저자는 역설한다. 남북의 정통성 논쟁과 이를 둘러싼 민족주의 세력, 뉴라이트 간의 극단적 논쟁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탁통치 반대운동의 광기와 과대평가된 김구를 다시 돌아보고 여운형의 중도노선을 재조명한다. 이어 현대사의 줄기를 타고 민주화와 현재의 과제에 대해 저자의 견해를 피력한다.

저자는 최대한 이성적인 입장에서 좌우에 대한 합당한 비판을 펼치며 독자를 인도하는데 눈여겨 볼 부분이 많다.

하지만 저자는 지나치게 '상식인'의 입장이다 보니 깊이가 부족하거나 오류를 범하는 부분도 꽤 보인다.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의 학술논쟁을 관통하는 흐름이 친일파 옹호론과 친일파 처단론의 정치논쟁이라는 부분에서는 중간논리가 생략된 채 성급하고도 무책임한 논점의 이동이 일어난다.

물론 상식인의 입장에서 학술논쟁의 저변에 깔린 키워드를 전달하려는 노력에서 나온 결과임은 인정하나, 설령 대다수의 상식인이 그러한 인식을 지니더라도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의 논쟁을 이렇게 단순화시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이 학술 논쟁이 담고 있는 다양한 의미들을 사장시켜버릴 우려가 있다.

또한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하며 '정착자 식민지' 문제를 단순히 인구문제로 이해하는 어설픔을 보여주며 의미없이 가상의 역사소설을 쓰는 부분도 있다. 게다가 역사교과서를 통해 역사관을 형성해본 일이 없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특수한 경우를 근거로 국정교과서와 이를 둘러싼 헤게모니 다툼을 '안이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황당할 정도이며 242쪽에서 김구가 남한 단정 수립운동을 펼치는 이승만에 대해 '절대적 충성을 다짐' 했다는 서술에는 그 내용의 파격성과 더불어 아무런 근거도, 각주도 달지 않아 독자를 당황하게 만드는 구성의 파격성도 함께 갖추고 있다.

이외에도 전후 50년대에야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북한의 집단농장화를 해방 직후 실시된 토지개혁의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설명하는데 적용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등 여러 허점을 갖고 있다. 그사실 처음엔 이와 같은 오류가 너무나 눈에 띠어서 책을 읽고자 하는 마음이 반감될 정도였다.

그러나 이는 저자가 사학 비전공자이며(철학 전공) 아직 학부를 졸업하지 못한 대학생이라는 점을 살펴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와 같은 문제점을 많이 품고 있지만 저자가 보여주는 이성적인 태도, 참신한 해석과 패기넘치는 열정은 위와 같은 문제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책을 읽을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현실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뉴라이트가 뭔지 알고 싶다면, 뉴라이트가 죽도록 밉거나 뉴라이트가 미치도록 좋다면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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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북스토리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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