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2일 목요일

추천도서, 나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로렌 슬레이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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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 슬레이터'라는 이름이 낯익다. 프로필을 보니, 몇 년 전에 읽었던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의 저자였다. 그 책은 꽤 흥미로웠고 다양한 실험과 사례를 통해 인간의 불완전한 심리 상태를 볼 수 있었다. 로렌의 이름을 봤을 때 그 책의 저자라는 것을 어렴풋이 기억했지만 그 책을 읽을 당시에는 로렌에 대해서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단지 흥미로운 그 책내용에 빠졌을 뿐이다. 이 책<나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에코의 서재. 2008)을 접했을 때, 이전에 읽은 로렌의 책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심리학자가 쓴 대중서적의 구성방식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이 책의 흐름이 이전의 로렌의 책과 비슷하거나(실험이나 사례중심) 인간이 거짓말을 하는 심리적 현상을 학문적으로 분석한 글이라 생각했다. 어찌됐던 이전에 읽은 그녀의 책에 대한 만족도가 있었고, '거짓말'이란 주제에 대해서도 충분히 관심이 있기에 이 책을 읽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평범하지 않은 내용임은 분명하다. 그것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 있어서가 아니라, 의도적인 것인지 쓰다보니 그렇게 흘러갔는지 로렌도 수시로 '이 말이 진실일까요? 거짓일까요?' 책 속에서 물어온다. 정답이 둘 중 하나라면 이 책의 내용또한 간단할 수 있고 이 책의 개성또한 덜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맞출 순 없다. 그 물음에 진실이라 답하면 로렌은 거짓이라고 말할 것이다. 거짓이라고 답하면 진실이라고 말할 것이다. 로렌은 왜 그런 말장난을 하는걸까. 아니면 그것이 나름의 최선의 표현방법일까. 그런 말장난을 하는 상황자체가 로렌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그녀의 그런 삶의 부분이 강하게 드리워진 시기를 회고하면서 진실과 거짓을 버무려 이 책을 쓴 것이다.



그녀의 의도를 그나마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은 거의 마지막 부분이다. 거기서 비유를 든다. 14세기에는 지구가 평평한 것이 진실이었다. 마찬가지로 과거 한때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것이 진실이었다. 둘 다 그것이 진실로 인정될 때는 진실이었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로렌은 간질환자다. 하지만 간질환자로의 낙인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하다. 간질환자 라는 것이 밝히기 힘든 자신의 치부라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자신이 간질환자인지 자신있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간질이라는 병명에 대한 해석에 회의가 들기 때문이다. 같은 증세를 의사에 따라 다양하게 진단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과 관련 있는 부분은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에도 있다. 거기서 정신과 의사들이 얼마나 정신병에 대한 진단을 객관적(?)으로 내리는가 하는 실험을 했다. 여러 차례 실험을 했고, 약간의 상식을 벗어난 과도한 행동만으로 정상인이 정신병 진단을 받는 게 아주 흔하다는 결과를 얻게 된다. 정신병 또한 의사의 주관적인 해석에 따라 아니면 물질적인 이유로 정신병으로 처방하고 있었다. 아마도 지금 정신병원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억울하게 입원된 사람들이 꽤 있을 거라는 것을 추측케 한다.



로렌이 자신의 간질증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그런 진단을 내린 의사를 신뢰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간질발작'을 즐겼다. 발작을 일으키면 한 순간에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고 그리하여 일부러 발작 연기를 하기에 이른다. 이 책을 보면 간질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를 제법 이해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가도 로렌의 상황이 그 중에서 좀 특이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물론 로렌이 간질환자 라는 것이 맞다는 가정하에서다.



이책에서의 로렌을 통해 간질환자들 혹은 과도한 자기세계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심리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로렌이 발작연기로 사람들의 주목받은 것처럼 지금의 모든 상황과 사람들의 심리까지 꿰뚫고 있어서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완전히 판단능력을 잃은 것이 분명한데도 정작 그들은 구원받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가엽게 여기는 것처럼 자신이 자신은 물론 상황을 통제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상황에, 간질병에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둘 필요가 있다.



로렌이 심리학자, 작가로서 그 동안 쌓은 이미지가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이 나왔다면, 망상에 사로잡힌 어떤 미치광이의 주절거림, 헛소리 정도로 평가절하되었거나 아예 책으로 출판되지 못했을 수도 있어보인다. 로렌이 이런 책을 너무 서둘러 내지 않은 것은 참으로 현명한 처사라 할 만하다. 어느정도 작가와 심리학자로서 신뢰를 쌓은 로렌이 이 책을 냈고, 이제는 명확하지 않더라도 심오한 그 어떤 것을 드러내려는 시도를 한 것처럼 보이는 이 책이, 사람들의 관심을 충분히 받고 그 가치를 인정 받을 가능성을 갖게 된 것이다. 진실과 거짓사이에서 명확해 보이지 않은 내용 자체가 새로운 관점에서 사고할 계기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시도 자체가 꽤 흥미롭고 창의적이기 때문이다. 착각은 창의성의 투박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로렌은 범상치 않은 어린시절, 20대 시절을 살았다. 이 책의 내용은 그 시절을 그녀만의 방식으로 회고한 것이다. 그 내용 중에는 그녀자신조차 거짓인지 진실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부분도 꽤 있다. 간질환자로서의 심리, 고통, 어린시절 작가로의 도전, 작가선배이자 아버지뻘 되는 유부남과의 일탈된 애정행각, 위로가 필요했던 시점에 우연히 들른 알코올중독방지 모임에서 알코올중독자로 가장해서 받은 위로 등. 로렌은 스스로의 기준으로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거짓말로 받아들여진다. 그런 상황 자체가 궁극적으로 진실이라는 것을 말함으로써 진실과 거짓에 대한 진정성을 새로운 관점으로 생각할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제법 의미있게 다가오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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