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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랑이야기가 있다니 놀랍고 감동스럽다. 이것이 진정 소설인가. 에세이인가, 회고록인가. 표지에 장편소설이라고 낙인찍어 놓았지만 왠지 소설이 아니라 작가의 강렬했던 삶의 한 순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다. 당시의 상황 뿐만 아니라 감정, 생각 까지도 올연히 담은 체... 저자 프로필을 보니 젊은 시절 미국과 프랑스에서 공부했다고 하니, 자전적 요소가 있을지언정, 소설이라 하긴 해야겠다. 소설 속 주요 배경은 캐나다이지 않은가.
조지의 사랑은 그야말로 지고지순할 뿐만 아니라, 마지막 부분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강렬함까지 담고 있다. 어찌보면 너무 순진하고, 바보스럽고, 융통성 없어 보이는 사랑이다. 어찌보면 너무 순수하고 거리낌 없고 자기 방식에 충실한 사랑이다. 그 사랑을 이렇다 저렇다 논한다는 것은 지고지순한 사랑의 주인공들에게 신뢰되는 일이지 않을까. 그저 소설로 나왔고, 그 사랑이야기를 세상에 내 놓았고, 그것을 접했으니 그 사랑을 그저 몰입하여 제대로 바라봐주면 족하지 않을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다가도, 남이 보기에 저럴 필요까지 있을까. 저 여자가 무슨 매력이 그렇게 있을까 싶더라도 조지에게 나스타샤는 그녀가 나타난 순간부터 그에게 삶 자체가 되었으니 가타부타 말 말아라. 남들이 뭐라하던 조지는 자기방식대로 미련하게 나스타샤를 온몸과 온정신으로 사랑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행복했고 삶이 충만해졌으며,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시간적 배경은 대놓고 '언제'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고르바초프와 88올림픽이 언급되는 것 보니 지금으로부터 대략 20여년 전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몇년 간의 강렬했던 삶의 추억과 사랑을 끄집어낸다. 공간적 배경은 캐나다 웰드릭 로드다. 물론 조지는 낚시에 미쳐서 아무리 바빠도 짬을 내어 이곳저곳 쏘다니기에 캐나다 곳곳, 특히 호수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친구이자 동료교수인 그렉은 낚시에 미쳐있다는 점에서 죽이 잘 맞다.
소설의 주인공은 '조지'다. 그는 소설 속에서 30대 초반의 유능한 대학교수로 한국인이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했고 캐나다로 건너와 정착했다. 그의 직업이 명망있는 교수라그런지 캐나다 사회에서도 제법 잘 적응하며 살아간다. 자기와 취미가 같은 그렉이 있고, 그가 정착한 웰드릭 로드에는 그가 적응할 수 있게 손을 내밀어준 마을사람들과 멜리사가 있다. 아름다운 멜리사는 마을 공동체 일원으로 조지를 도와줬을 뿐만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그를 남자로 생각한다. 그것을 아는지모르는지 조지는 별다른 언급이 없고, 결국 멜리사가 고백한다. 조지는 당황스럽다. 멜리사처럼 아름다운 아가씨가 자신에게 이성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이 낯설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더구나 결혼 자체에 대한 깊이있는 고민을 하지 않은 터라 갑작스런 멜리사의 고백에 조지의 반응은 친구로 지내자는 거였다. 한 마디로 멜리사의 고백을 거절한 것이다.
결혼 자체에 대한 부담이 있었고 그 상대가 외국인이라는 것도 간과하기 힘든 점이었다. 그런데 그의 삶에 나스타샤가 나타난다. 그녀는 조지가 낚시하러 갈 때 오고가는 길목에 있는 케빈의 커피숍에서 일했다. 그녀는 영어를 하지 못했고, 멜리사보다 투박했으며, 몸과 마음이 상처로 얼룩져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조금씩 조지의 삶 속으로 들어온다. 아니 그가 그녀를 끌어들였다.
나스타샤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이전에 그녀가 겪었던 일들은 더욱 끔찍했다. 심신으로 완전히 짓밟혀 버린 상황이었다. 멜리사는 조지를 도와주었고, 조지는 자신의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나스타샤를 외면할 수 없었다. 멜리사는 안 되고 나스타샤는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이리라. 내민 손의 고마움을 잘 아는 그가 나스타샤를 보자 손을 내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녀는 묘한 매력으로 그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둘은 자주 만났고 어느순간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커피숍이 한 동안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 되자, 그는 그녀를 집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온갖 절망적인 상황들을 사랑으로 하나씩 걷어낸다.
캐나다 사회에 전혀 적응하지 못할 것 같던 나스타샤는 조지의 도움과 자기안의 깊숙한 곳에 내재해 있던 발랄함을 조금씩 꺼내어 영어도 배우고, 상처도 치유하고 사람들과도 어울리고 직장까지 갖기에 이른다. 조지의 삶에 어느순간 그녀는 최우선순위가 된다. 함께 낚시하러 갔고, 여행했으며 함께 하는 시간을 행복해했다. 그러나 그녀의 아픈 과거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그녀는 우크라이나에 남편인 보리스와 아들인 아니카가 있었다. 보리스와 나스타샤는 정치적 사건으로 쫓겼다. 그런데다 남편은 바람이 나서 그녀를 버렸고 그녀에게서 아들까지 빼앗아갔다. 그녀는 남편에게 버림받았고 자식을 빼앗겼으며 쫓기는 신세로 만신창이가 된 채 우여곡절끝에 캐나다로 건너온 것이다.
조지는 나스타샤를 너무 사랑해서 현재는 물론 그녀의 과거까지 보듬어주려한다. 그냥 현재의 나스타샤만을 열렬히 사랑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것이 오히려 지혜로운 사랑이 아닐까. 그러나 자식을 가슴에서 완전히 지우기는 힘들다. 조지는 자발적으로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보리스와 아니카 소식을 알아내고 많은 돈과 노력, 시간을 들이고, 친구인 매튜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해낸다. 보리스와 아니카를 자유의 나라로 탈출시킨 것이다. 정치범으로 잡혀있던 보리스를 빼내오고, 국가의 관리하에 있는 아니카도 데려온다.
그들은 자유의 나라로 건너오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보리스는 심신으로 심각한 상태였다. 보리스가 아니카를 돌볼 수 없음은 물론이고, 자기자신도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처지였다. 조지는 왜 나스타샤의 과거까지 그렇게 보듬으려 했을까. 자칫 그녀를 잃을 수도 있는데 왜 그랬을까.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모습일까. 그렇다면 차라리 진정한 사랑을 포기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그녀 또한 가슴 한켠에 아련함이 남아있을지언정, 차라리 남편과 아들을 잊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이성적으로는 나스타샤를 보리스와 아니카에게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지라도 감성적으로는 그것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이미 조지에게 삶 자체였기 때문이다. 조지는 점점 술에 찌들어갔고 피폐해졌으며, 주변에선 유능한 한 교수의 망가져 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봐야 했다. 그는 스스로는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그녀에게는 모든 걸 다 주었고 가능한 모든 조치를 다한다. 한 마디로 아낌없는 사랑이었다. 심지어 그녀를 놓아주어야 한다는 사실까지 받아들일 만큼...
나스타샤 역시 그와 헤어지기가 너무 힘들다. 하지만 자신의 보살핌이 필요한 보리스와 아니카를 외면할 수도 없다. 그녀는 웰드릭을 떠나야 했다. 조지는 그녀를 놓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취업자리를 알아봐주었고 그녀의 가족이 정착할 수 있는 일련의 계획과 돈을 준다. 나스타샤는 그를 떠나야 한다. 그것을 알기에 더욱 견디기 힘들다. 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조지를 떠나야 하고, 자신이 보리스와 아니카를 스스로 자립할 때까지 보살펴야 한다. 하지만 그녀또한 최소한의 선택권이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이 그토록 충격적인 의미를 가지는지는 그로부터 사 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된다.
"조지, 분명히 알아둬. 나는 당신이 말한 대로 할 거야. ~ 나는 당신의 양심을 먼저 생각하고 있는 거야. 당신은 보리스와 아니카를 버려두면 살 수 없는 사람이야. ~ 나는 아니카와 보리스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고 있어. 만약 보리스가 낫는다면 그리고 아니카가 충분히 자란다면 이제 누구도 내게 무엇을 강요할 수 없어. 나는 자유로워지는 거야. 당신조차도 내게 뭐라 말할 수 없어. ~ "
(p. 588)
소설이 당시의 상황과 감정을 이토록 생생한 느낌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왜 조지수라는 필명을 사용했을까. 소설 속 '나'는 '조지'다. 캐나다에서 불리는 이름이다. 작가의 필명은 조지수. 그저그런 느낌괴 재미라면 이 작품이 소설이든 아니든, 아니라면 얼마나 시실에 근거한 것인지 궁금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슴을 후벼파는 사랑이 있고 그것이 너무나 생생하여, 작가의 실제이야기가 이 소설에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물론 자전적인 소설이 많다. 그렇다면 어떤 비율로 사실과 상상이 결합되었을까. 개인적인 짐작으로는 이 소설이 제법 많은 작가의 삶을 담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기본 뼈대는 사실에 근거했을 테고, 소설 속 인물의 이름을 바꾸고, 현재와 과거의 사실들을 절묘하게 섞었을 것이다. 좀더 극적으로 포장했을 것이며, 프랑스 어느 마을을 캐나다 웰드릭 로드로 바꿨을 것이다. 이 모든 게 개인적인 짐작일 뿐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굳이 필명을 갑자기 사용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전의 책에서는 필명을 사용하지 않은 듯 한데...
전체적으로 특히 소설의 앞부분에서는 소설의 흐름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는 듯한 내용이다. 이야기가 중심이 아니고 이야기 속의 인물, 상황, 캐니다에서의 이민자의 삶, 마을 공동체의 느낌 등을 상당부분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재단한다. 유태인 친구를 언급하다가 유태인 민족을 철학적으로 고찰하고, 조기유학에 대한 병폐를 꼬집는다. 그리고 캐나다에 정착한 각국의 이민자의 모습을 나름대로 철학적으로 분류한다. 소설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자칫 이야기 흐름을 잃을 수도 있었다. 사실 앞부분 곳곳에서 이게 소설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때가 많았다. 그때는 이 소설에 감동과 재미를 느끼기도 전이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소설적인 느낌이 있긴하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그렇다. 나스타샤를 떠나보내고 몇년 뒤, 조지는 대학기숙사에서 자신의 짐을 빼야 했고, 이사짐을 옮기기 위해 그는 전화번호부를 뒤적인다. 그리고 발견한 '보리스' 라는 이름. 그가 바로 불과 몇년 전에 반쯤 죽어있던 보리스였고, 나스타샤의 남편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부분을 통해 나스타샤가 잘해냈다는 것을 알게되고 그녀가 이제는 행복할 수 있겠구나 생각한다. 조지는 이제 안심이 되었다. 그는 그것으로 알코올 중독자의 삶을 청산할 힘을 얻고, 이전의 그의 모습으로 복귀한다. 또 하나의 극적인 장면, 아니카가 조지를 찾아온다. 입학추천서를 부탁하러 온 것이다. 그것은 조지가 나스타샤에게 당부한 말이기도 했다. '나스타샤가 정말 잘 해냈구나'. 더구나 아니카를 캐나다식 이름으로 바꿨다. 아니카의 새로운 이름은 그와 같은 '조지'였다.
조지는 일어섰다. 헤어지는 게 아쉬웠다. 나는 마지막으로 일렀다.
"조지, 어머니께는 모든 것이 잘 되었다고 말씀드려.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그럼 다음에 보자."
아니카는 나를 가만히 쳐다본다. 의혹에 찬 표정이다.
"선생님,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p. 607)
나스타샤는 온타리오 호수에 투신했다. 조지와 함께 앉아서 사진 찍었던 벤치에서 몸을 던졌던 것이다. 나스타샤가 이전에 헤어질때 했던 자유가 그것이었다니.... 조지는 나중에 나스타샤를 따라 그녀의 무덤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능가하는 애절한 사랑이야기 아닌가.
작가의 상상력이 특히 마지막 몇몇 부분을 극적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은 강하다. 전형적인 소설적인 마무리라 할 만 하다. 어찌되었던 작가의 강렬했던 삶의 한 시기 혹은 작가의 감성적인 상상력이 만들어낸 한 시기를 생생하게 제대로 드러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추억이기에 이야기 속의 주인공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장르로 펴내지 않았을까. 소설이든 아니든 잔잔하게 흘러가면서도 소설 속에서 접하기 힘든 철학적 깊이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독자의 시선을 계속적으로 붙잡는 흡입력이 강한 작품이다. 마지막 부분에는 그 어떤 사랑이야기 혹은 소설 속 장면 못지않은 극적인 부분도 있다. 이방인으로서의 캐나다 웰드릭 로드의 삶, 친구들, 낚시, 컬링, 교수라는 직함... 그리고 무엇보다 강렬했던 존재인 나스타샤와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펼쳐진다. 600쪽이 넘는 방대함마저도 녹일만한 지루하지 않은 사랑이야기가 있다. <나스타샤>를 읽고 실망하는 독자가 있을까. 있다면 내용이 아닌 양적 방대함에 무릎꿇고 도중에 책을 덮은 이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소설 앞부분에서 이 책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 나 역시 도중에 덮을 뻔 하기도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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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만의 태그들(중고책 사냥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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