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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孝)를, 장남의 도리를 말하지 않으며, 주인공 용준의 손사래 치는 모습에서처럼 세상의 시선을 향해 의도적으로 드러내어 인륜(人倫)을 이야기하려하지는 않는다. 그저 삶의 기둥, “든든한 산”이 되 주었던 이 땅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지키고 싶은 우리의 전통과 정체성에 대한 고집스런 이야기이며, 작가후기의 표현처럼 작품의 플롯은 “가장 아름다운 청년, 가장 아름다운 아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삶을 살다간, 아름다운 남자”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전편에 흐르는 가부장적이고 유교적인 색채를 외면키는 어렵다.
의식을 잃고 스러진 아버지, 죽음의 사신이 찾아온 아버지는 일 년, 아니 수개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군대를 막 제대하고 복학을 준비하는 청년 앞에는 이처럼 식물처럼 누워있는 뇌사상태의 아버지가 있다. 그러나 삶의 의지였던 아버지를 잃을 수는 없다. 한여름이면 누워있기만 한 아버지의 욕창을 막기 위해 하루 두 번씩 씻어드리는 정성, 이렇듯 극진한 수발이 17년간 지속된다면 오늘의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과연 무엇일까?
20대의 젊은이 ‘용준’이 그의 생(生) 전반을 의식도 없이 누워있는 아버지를 위해 보내는 이 극단의 삶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용준이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 어떠한 원망이나 증오를 발견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아버지의 살아 있음에 대한 고마움만이 절절하고, 아내에 대한 연민, 어머니, 형제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진정을 더하기만 한다. 그러나 용준이 보여주는 가족에 대한 이타적 삶에서 외려 전근대적이고 보수적 가부장의 이기심을 발견하는 것은 억척이 될까?
소설 첫 장, 프롤로그의 단정적인 의지의 구절, “ 그때, 내 인생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직 목이 메는 슬픔과 아득한 두려움이 전부였다. ~ 中略(중략) ~ 아버지에게 죽음의 사신이 찾아온 것이라 알았던 그때에 자신의 인생을 생각할 자식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처럼 어버이의 죽음과 마주한 자식이 갖는 극히 당연한 감성의 본질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삶의 전반 내내 부모만을 향한 도리로만 구성될 수 없을뿐더러 그렇게 되어서도 아니 될 것이다. 어머니와 아내에게, 형제에게 보이는 책임감과 그 책임의 공감적 기대의지는 작품 속에서 비록 순화되어 있으나 보편적 현실성을 갖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소설이 이 시대의 삶에 대해 너무 가혹한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갈등케 한다.
지방의 소도시인 영주시내에 있는 고집스럽고 낡아 보이기만 하는 ‘고향 사진관’의 간판에서 용준의 인물 됨됨이와 그의 고집을 읽을 수 있다. 아버지의 호흡과 손때, 그 존재적 의지를 수호하려는 의미와 함께 효와 가족의 윤리, 그리고 이 시대에 상실되어가는 전통의 끝자락이라도 움켜쥐려는 작가의 의도가 겹쳐진다.
술에 젖어 지내는 용준의 단조로워 보이기만 하는 일상에서 조차 굳이 삶의 존귀함이란 가치로 승화시키려 하는 억지스러움이 불편하다. 더구나 암(癌)선고를 받고 담담하게 죽음의 시간을 맞이하는 주인공 용준과 주변 인물들의 그 이성적 합리성이 선뜻 수용하기에 버거운 부조리로 느껴진다. 물론 자식을 보내고 나서 터뜨리는 어머니의 그 통절한 울음에서 자신의 삶을 피워보지 못한 자식에 대한 애절함이 읽히지만 그런 용준의 삶을 진정 ‘아름다운 삶’이라고만 추앙하는 것은 너무 냉정한 평가가 아닐까? 여기서 삶의 진정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딜레마에 빠져들게 한다. 작가가 지나치게 전통이란 가치에만 귀 기울인 것은 아닌가? 인간의 삶에 대한 또 다른 가치나 모습은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일까?...
순간 뜨거운 열정에 휩싸였다 이내 식어버리는 오늘의 사랑, 시류를 좇는 패션 간판처럼 변화무쌍한 사람들의 경박함, 잊혀져가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반발적 행위에 무게를 앉히고 있어, 그 사라져 가는 전통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이 분명 존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또한 아비에 대한 자식의 극진한 섬김이 선(善)임에는 분명하지만 그의 남은 가족, 아내와 아이들이 마주해야 할 세상은 힘겹게만 보인다. “삶과 죽음이 그처럼 가까이, 종이 앞뒷면처럼 맞붙어 있을 줄이야!”라고 용준이 외치듯이 선과 악도 하나가 아니겠는가? 용준이 아름다운 청년, 아름다운 아들, 아름다운 남자이지만 이를 절대적 가치로 동의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인륜의 목메는 슬픔과 죽음 앞에선 우리들 모두에 내재한 순수 선이 한 남자의‘삶의 주관적 가치’에서 조차 선이기만 한 것에는 많은 의문이 교차한다. 고귀한 품성을 가진 용준의 아내에 까지 이르면 그 아름다움과 이타심의 자의성에 허구의 위선이 느껴져 역시 조화롭지 않은 그 무엇을 느끼게 된다. 팔순의 아버지, 그리고 20대의 자녀가 있는 아들이자 아버지이기도 한 나로서 이 작품의 주인공 용준의 그 존귀한 심성에 머리를 숙이고 작가의 의도처럼 경외를 보내는 마음은 다르지 않다. 또한 이 작품의 소설적 재미에도 갈채를 보낸다. 그럼에도 전통과 새로운 가치에 대한 시선의 불균형을 느낄 정도의 고집스러움으로 답답한 무엇을 지우기 어렵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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