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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의 단절된 소통을 복원하는 작은 주춧돌이 되었으면...
평범한 범부로서의 추억,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 그리고 작가로서 작품에 투영하였던 의지와 시선, 인간 본성과 언어에 대한 사유가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때론 시의 잔잔한 여운과 함께, 때론 강직한 신념과 이성의 목소리로 정리되어 있는 이 땅의 부재한 소통을 복원하기 위한 제언집(提言集)이라 할 수 있겠다.
부산 피난열차의 지붕에 닥지닥지 붙어, 떨어져 죽음에 내몰리는 지옥 같은 피난의 대열에 끼었던 무수한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고관대작들은 하물며 그네들의 개새끼, 가제도구 일체까지 실어 나르던 넉넉하게 차지한 그 열차 객실 안 다른 세계의 조명은 평범한 장면이 아니다. 순진무구했던 백성들과 몰염치와 사악함이란 표현이 무색할 정도의 후안무치(厚顔無恥)의 그 인간들이 시간의 장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에도 이어지는 것을 볼 때 수치스러움이 불길처럼 훅하고 엄습해 옴을 느낀다.
딸아이의 선물에 감격하는 아빠의 소박함과 “아버지를 묻던 겨울은 몹시 추웠다.”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연륜이 더해지면서 우린 어느 순간 ‘생명의 개별성’에 대해 보다 실체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아버지를 동토(凍土)의 지하에 묻던 그 절절한 슬픔은 시간 속에 바래지고, “바래지는 또 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 中略 ~ 이 풍화의 슬픔은 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울 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라고 했다.
겨울철이면 유난히도 많이 들려오던 소방차의 사이렌소리에서 타인의 구원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이타적 시스템의 긍정성에 감사하는 작가의 타자에 대한 연민이 진정으로 다가온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위험이 내재한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소방대원,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화마(火魔)에 무너져 내리는 건물에 묻혀버린 소방대원들의 고귀한 희생에 우리들의 시선을 멈추게 하기도 한다.
생명을 담보로 한 소방대원들 간의 신뢰와 의지에서 타인이 없는 내가 존재할 수 없음을 이해한다.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 다가오지 않으면 고립된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 ~ 中略 ~ 다가오는 인기척, 그것이 인간의 희망인 것이다.”
크게 세 단원으로 묶여있는 글 중에서 나는 ‘말과 사물’의 장(章)에 수록된 ‘회상’과 동명의 ‘말과 사물’, 이 두 글에 유난히 공감으로 머리를 끄덕여 댔다.
그의 몇 몇 작품을 접했던 독자로서의 공감뿐 아니라, 우리사회, 나아가 인간사회에 닿은 그의 시선에 대한 동의가 더욱 크다. ‘난중일기’와 이순신 장군을 배경으로 한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이란 좁디좁은 울타리 안에서 조차 흉물스럽기 그지없는 이 땅 사대부들의 졸렬하고 이기적 당파의 그 적나라함이 그려진 『남한산성』에서 오늘, 우리사회의 무능함을 반복해서 읽는다.
“사실에 입각하는 것, 인간이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이순신의 승리 요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의견이란 것들, 이 사회의 당파 자들은 자기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에 소속되지 않는, 탈정치성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자신들의 재앙자로 처단하곤 한다. 바로 탐욕으로 인한 불안함이리라. 이것이 한국사회가 지금에도 고스란히 재연하고 있는 현상이다. 사실에 대한 인식도 없는 자들, 자기가 편에 속한, 자기의 의견이란 것으로 보수니, 진보니, 좌니, 우니하며, 자기집단의 이익을 쫓고, 마치 무슨 대단한 투사인양 되먹지도 않은 주둥아리를 놀리는 인간들의 행세와 이에 열광하는 무지한 추종자들을 보면 입맛이 쓰디쓰다.
“이 사회적 담론이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는 능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됐기 때문에, 대체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수가 없는 것이죠. ~ 中略 ~ 이런 언어는 인간의 소통에 기여 할 수가 없는 것이고 이런 언어가 횡행 할수록 인간 사이에는 소통이 아니라 단절이 심화되는 것이고 이 단절이 지금 거의 완성되어 있는 것 같아요.~ 中略 ~ 당파성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 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시대의 언어가 폭력의 수단인 무기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는 작가의 진단은 그래서 사실이며, 사실이기에 안타깝다.
“이 세상의 바탕을 이루는‘펀더멘털 베이식(Fundamental Basic)’이 있다면 악과 폭력이라는 작가의 시선에서, 나는 문득 1만 년 전의 수렵과 채집, 그리고 약탈에 적응하고 멈춰진 오늘날 인간의 심리적 기제를 말하는 진화 상태를 말하는 글이 떠오른다. 생물학적으로 틀리지 않은 성찰이다. 그래서, 인간의 이성, 자유와 평화에 대한 열망, 도덕율이 인간이란 차별성을 규명하는 중요한 특질이 된다.
그러함에도 우리사회는 당파적 의견만이 난무하고, 이 무지막지하고 상대에 냉담하며, 폭력적이기까지 한 언어의 무늬만을 띤 독설들이 이젠 완벽하게 소통을 차단해 버렸고 그저 벽에 대고 각자 떠들어대는 비극적 현상으로 치닫고 있기만 하다. 그 잘난 무슨 무엇하는 논객이란 작자들은 소통이란 걸 알지도 못하며, 지금도 여전히 제깟 녀석의 목청만 높이고 있다.
이런 시대에 작가 김훈선생의 소설가로서의 소명의식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 더욱 나의 정신에 공감의 떨림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내 언어는 남의 언어에 부정당하면서 소통의 문을 겨우겨우 열어나가는 것이죠.” 그렇다. 힘겹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언어의 허약함이 아무리 본질적이라도 작가의 표현처럼 소통의 힘이 내장되어 있지 않은가? “소설을 쓴다는 것은 불완전한 언어로 불완전한 세계에서 사는 불완전한 인간에 대해서 쓴다는 것입니다.”라는 선생의 철학에 백번 만번 아니 천만번 공감한다. 작가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 삶의 시선을 확장해 주는, 그리고 우리의 글과 소통으로서의 언어에 대한 정말 귀한 사유를 얻었다. 선생에게 해금의 소리가 항시 울려 퍼져, 우리들에게 선생의 고귀한 언어들이 지속하여 많이 전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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