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14일 일요일

추천도서, 밀란 쿤데라 커튼(밀란 쿤테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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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도 에필로그도 없다. 그냥 무작정 시작된다. 무엇을 향해? '소설의 비밀을 파헤치러 ~ ' 라고 생각하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지금 나는 그 비밀을 알아냈는가? 그렇다 아니다로 무 자르듯이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다. 어렴풋하지만 그 비밀의 실체가 미묘하게 보이긴 한다. 하지만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순 없다. 앞으로 도수를 높인 안경을 착용하던지 하면 또 모르겠다.

처음엔 어려웠고, 그래서 답답하고 지루했다. 소설에 대해 지은이의 고상한(?) 견해가 쏟아지는 듯 하는데, 그것이 내게 고상함으로 받아들여지는지 아닌지 조차 분간하기 힘들만큼 나의 이해능력은 부족했다. 그럼에도 굳이 핑계거리를 찾자면, 자신의 생각을 좀더 간단명료하게 쓰지 못한 지은이를 탓할 수도 있고, 역자를 탓할 수도 있다. 초반부에는 그런 핑계거리에 대한 막연한 기댐으로 인해 나의 이해력 부족을 애써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책의 흘러가는 스타일, 표현방식, 인용되는 책들에 조금씩 익숙해지자 점점 더 내 이해력 부족을 탓하는 쪽으로 무게가 실렸다. 물론 핑계거리의 기댐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소설 읽는 재미를 느낀 지가 얼마되지 않았다. 그래서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그냥 허구로 쓰여진 이야기 정도라만 이해해도 된다. 내가 전문 비평가도 아니니깐. 난 그저 소설을 즐기거나 그것을 읽고 실망하는 독자일 뿐이다. 실용서 위주의 독서에서 소설을 읽는 경우가 조금씩 많아졌다. 여기서 많아졌다는 것은 내 기준에서 그렇다. 책을 즐겨 읽게 된 건 대략 5년 전이고, 소설을 읽는다 라고 말할 정도가 된 것은 올해 부터다. 참고로 올해 읽은 소설이 10권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 수준에서 소설은 그저 흥미위주로 읽는 장르 정도로 생각하다가 이 책을 만난 것이다.

커튼 뒤에 숨은 소설의 실체 혹은 비밀을 알려줄 듯한 분위기가 호기심을 자극했고 책을 펼치게 됐다. 이해력이 부족한 경우에는 하나하나 명확하게 짚어주는 것을 선호한다.그리고 그 명확한 메시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과 예시를 제시하고 정리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 책도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그러나 실망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의 이해력은 부족하지만, 내가 그 부족함을 인식하고 있기에, 좀더 천천히 읽는다던지, 현재 읽는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얼마 전에 읽었지만 그새 망각한 부분을 다시 찾아 대략적으로나마 다시 읽는 성의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망적이다.

책은 소설에 관해 지은이의 생각을 담은 것으로 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소설을 대함에 있어 새로운 자극과 통찰을 준다. 그 점은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진 장점이다. 총 7부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 소설 속에 내재된 혹은 연관된 지은이의 생각들이 여러 개의 소제목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7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진 글들 중에 각각의 그룹을 대표할 만한 하면서 그 또한 하나의 소제목 형태로 된 소제목이 각각의 큰 제목이다. 차례를 쭉 훑어보면 책의 분량은 만만하지만, 그 내용은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된다. 각각의 소제목들에 언급된 어려운 표현들은 평소에는 접하기 힘든 것이고, 단어 자체가 익숙하더라도 그 조합이 낯설었다. 차례를 대략적으로 훑어보고 약간 움찔했지만, 내용에 대한 기대감은 더 커졌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거나 뻔한 내용을 읽는 것보다 약간 어렵더라도 새로운 관점이나 통찰을 제공하는 책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책을 펼쳤지만 내게는 낯선 작가와 작품들, 물론 그 명성이 너무나 대단해서 이름 자체는 낯익었지만 그 작품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낯설다는 표현이 가능할 듯 싶다. 더구나 지은이는 작가나 작품을 인용함에 있어 이런저런 구체적인 설명도 순서도 없다. 소주제에 대한 필요한 부분만을 무턱대고 인용하고 설명하고 재단한다. 그것이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용이 머리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좋지는 않았다. 독서능력이 평균치에도 못미친다고 생각되기에 더 그렇다. 그나마 책과 친해져서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지만 그렇다. 이전에는 거의 난독증 수준이지 않았을까 싶다.

갑자기 내 독서능력을 언급했던 것처럼 지은이는 자신의 생각에 필요한 작품의 일부분을 여기저기서 집어내어 준비 안된 독자에게 무턱대고 들이민다. 거짓말 조금 많이 보태서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다. 그래서 책을 이만 덮을까 아니면 꾹 참고 읽어나갈까 잠시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손은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내용에 집중하지 못했지만, 눈으로는 읽어(?)나간 것이다. 아니 눈운동을 한 것이다. 다행히 각각의 소주제는 무척 짧았다. 짧게는 한장 많아도 서너장 정도였다. 책을 펼치고 1부를 한타임에 읽었다.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남지는 않았지만, 1부를 끝까지 읽었다는 안도감으로 책을 제대로 덮을 수 있었다. 물론 책 읽기를 포기한 건 아니다. 일단은 그만 읽고 싶었고, 정신 맑을 때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엄살을 좀 과장되게 표현한듯 싶지만, 초반부에는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나마 2부부터는 서술방식에 적응되었는지 내용이 제법 눈에 들어왔고, 그 중에 머리 속에 박히는 것도 있었다. 점점 지은이의 메시지에 귀기울이게 되었다. 그리고 인용되는 작가나 작품에 적응되었고 관심도 커졌다. 책을 덮을 즈음엔 이전보다 소설에 대한 태도나 통찰력이 조금이나마 나아졌다는 우쭐한 기분도 들었다.

아주 명확하게 소설의 비밀 혹은 실체를 밝혀주지는 않지만 소설을 단지 재미 수준에서 끌어올려 보다 깊이있는 성찰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할 만하다. 인용된 작품들의 실체를 지은이의 시각에서 세밀하게 헤집어주기도 했다. 비록 읽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한번 도전해 볼 만 할 것 같다. 단 약간의 모험심이라도 갖고 도전하길. 책내용이 아닌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책 속에 그렇게 많은 작품들이 언급되었음에도 내가 제대로 읽은 작품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만약 언급되는 작품을 읽었다면 이 책이 훨씬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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