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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본성에 대한 냉혹하지만 매혹적인 탐색의 걸작!
인간이 수치와 모욕의 모든 단계를 내려가면, 마침내 ‘완전한 타락’에 이른다. 그곳은 선과 악에 관해 평등하다. 정말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세상이 아닌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세상처럼 여겨진다. 우린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혹 이처럼 우린 눈도 없이 살아가는 이전과는 다른 인간들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느 날, 한 인간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온통 환한 백색의 상태, 눈이 멀어버리는 고통으로 시작된다. 늘 상 그렇듯 실의와 혼란에 빠진 고립된 인간에게 우리들이 보이는 행동, 이타심과 동정의 손길이 주어진다. 그러나 눈먼 자의 차량을 훔치는 돕는 자의 도덕적 양심에 대한 인간 본성의 기회주의적 태도를 훔쳐보게 함으로서 작가는 진실의 눈으로 독자를 이끈다.
이내 이 백색의 실명은 전염병처럼 번지고, 당국의 신속한 격리조치로 이어진다. 이는 다수의 안전을 위한 소수의 희생이라는 그럴듯한, 일견 민주주의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의 이면에 내재하는 비인도주의적이고 이기적인 다수의 폭력을 미화하는 것임을 폭로하는 행위일 뿐이다. 이 작품은 이렇듯 초입부터 우리들의 치부에 대한 고통스런 의문을 마구 던져대기 시작한다.
작품의 전반부인 다수의 사회로부터 격리된 공간에서 자행되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에서, 집요하게 인간의 이성이라는 껍질을 벗겨내고, 그 근원에 자리 잡고 있는 본성을 추적한다. 궁극적으로 눈먼 자들만으로 구성된 이 폐쇄된 사회에서 우리는 그들 간에 상호 연민과 동정을 교류하고, 자발적인 도덕률이 지배하는 사회를 기대하지만, 이러한 소망은 여지없이 박살난다.
일군(一群)의 폭력적인 집단이 형성되고, 이들은 다수의 눈먼 자들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강제하는 기초가 없는 사회”에서 강제가 존재하는 사회, 규범으로서 조직화 된 사회로 질서를 유지하지만 오히려 부패와 악의 근원으로 작동하여, 인간의 취약한 사회적, 생물학적 본성을 대체하는 도덕적 질서와 첨예한 갈등을 가져오는 양면적이고 모순된 진실을 드러낼 뿐이다.
20명의 남성으로 구성된 눈먼 폭력조직은 음식물 공급을 대가로 각 병실마다 여성의 성적 향응을 요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병실의 구성원이 보여주는 반응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궁극의 회의(懷疑)를 일으키게 한다. 단지 같은 병실에 있음으로 인해 어떠한 관련도 없는 “남의 남자를 먹이기 위해 자신들의 다리사이에 있는 것으로 대가를 지불 할 생각”이 있는 여성이 존재 할 수 있을까? 이때 남자들은 희생이 불가피한 여자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화자(話者)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남자들은 연민과 동정심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패배했다.”라고.
염치도 수치심도 잃어버린 남자들, “눈이 빛을 잃으면” 인간들을 인도하는 자존감도 상실하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만다.
폭력조직이 저지르는 잔인한 성적인 광란의 밤, 자신들의 여성이 온몸으로 감내한 학대와 수치, 모욕의 대가인 음식물을 받으러 가는 남자들의 모습에서 우린 이기적이고 몰염치한 인간들을 보게 되고, 또한 지독한 인간적 모멸감과 연민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여기, 이 모든 눈먼 자들의 세상에서 오직 눈뜬 유일한 인간, ‘안과 의사의 아내’는 눈뜬 자로서, 이 모욕적이고 처참한 인간본성이 저지르는 진실의 모습을 전달하는 목격자이자, 희생자이며, 통솔자이다. 이 추악하게 드러나고 방치된 인간의 본성을 세상에서 오직 자신만이 감당해야 한다면, 그 고통의 무게는 과연 얼마나 될까? 미쳐버리고 말 것 같다. 그녀는 “아직 살아 있는 것이 이미 죽은 것이 될 때“, 마지막 한 조각의 존엄성이외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 때, 그 폭력조직의 우두머리를 살해한다. 이제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은 그저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서로 다른 방식 일 뿐“이다.”
폭력집단에 라이터 불꽃을 갖다 댐으로써, 일종의 화형형식을 띤 수용소(정신병원) 화재는 외부와 단절되었던 제한된 공간에서 열린 소통 공간, 다수의 사회로 이들을 연결한다.
그러나, 세상은 “박테리아도 살려면 서로 잡아먹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알려진” 극한적인 무법의 난장판, 미쳐버린 도시일 뿐이다. 오직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눈먼 자들만이 방치된 도시, 썩어가는 사체와 부패한 쓰레기, 오물의 냄새가 진동하는 세상, 거기엔 오로지 동물의 본성만 존재 할 뿐이다.
이 작품은 내내 우리에게 선과 악의 양면성, 세계의 모순성, 인간의 존엄성을 피할 수 없는 질문들로 가득 채워 곤혹스럽게 한다. 그리고 붕대로 눈이 가려진 성상(聖像)에서 신의 부존(不存)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진정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가? “사물의 질서가 뒤집혀 있어요. 늘 죽음을 나타내던 상징이 삶의 상징이 되어버린” 그런 세상에 살고 있음을 절감하게 만든다.
물신(物神)주의와 정신이 황폐화된 사회, 바로 오늘의 우리사회, 몰염치가 기승을 부리고 도덕적으로 이미 패배한 사람들, “우리는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하고,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 “어쩌면 눈먼 사람들의 세상에서만 모든 것이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는 지도 모르겠다.”라는 이 역설적 진실은 수치심도 모르는 우리들의 도덕적 양심을 쑤석거려 통증을 준다.
파괴된 인간의 도덕적 이성에 대한 너무도 분명하고 전면적인 경고로 그득한 이 작품은 오랜 세월 풍화되지 않고 우리 인간들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고전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문명사회, 자본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인간 이성의 위약함과 허위성에 대해 이처럼 냉혹하고 참혹하게 그리고 매혹적이며 상상력 넘치는 메스를 들이댄 작품은 당분간은 불가능하리라. 작가의 인간사회에 대한 희망이 여린 촛불처럼 위태롭게 하늘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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